부모자식과는 달리 부부는 유일하게 선택으로 만난 가족 구성원이다. 외롭고 힘들 때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아름다운 인연, 남편과 아내. 하지만 사랑으로 만난 부부라 할지라도 두 사람 사이에 언제나 '평화'만 깃들이는 건 아니다.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오해와 마찰 때문이다. 남편도 아내도 몰랐던 부부어 사전. 한참 연애 중인 미혼남녀라면 더더구나 필독할 것.
때로 무릎이 꺾이기도 하는 인생의 먼 길,
“남자는 자신의 독자성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여자는 관계와 친밀함을 창출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데보라 태넌) 남자와 여자는 외국인이나 외계인만큼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산다. 같은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여자와 남자가 영문도 모른 채 다투고 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같은 말을 서로 다른 목적과 의미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심각한 사실은 아내와 남편은 함께 살면서 매일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목적과 의미를 가진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가령 '관계'라는 말만 해도 남편과 아내는 그 뜻을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 남편에게는 '확인해야 할 절차'지만 아내에게는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유대'를 뜻한다. 대부분의 남편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을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과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마치 경계병이 자신의 초소로 접근하는 물체를 향해 암구호를 묻는 절차처럼 말이다. 확인 절차가 끝난 남편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신문, TV, 컴퓨터 앞으로 이동해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관계를 확인했으니 이제 안심하고 자신의 일에 몰두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아내는 불만이다. 하루 종일 떨어져 소원했던 남편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복원하고 싶은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역시 가벼운 대화와 스킨십이 필요하다. 아내는 이제부터 대화를 통해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은데 남편은 컴퓨터 속으로 달아난다. 줄행랑 남편을 팔짱 낀 아내가 노려본다.
“당신, 나랑 이야기 좀 해요.” “말해 봐.” 아내의 ‘됐어요'라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남편은 처음에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바보가 아니더라도 경험은 가장 좋은 학교다. 남편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은 아내 곁으로 가서 앉는다. 남편으로서는 나름 성의를 보이는 셈이다. “무슨 일인데…. 애 때문이야?” “당신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남편은 가장 좋은 학교에서 배운 교훈도 잊는다.
자신의 호의가 거절당한 남편은 무안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다시 아내를 안는다.
다른 관계와 마찬가지로 ‘부부관계' 역시 남편과 아내는 다른 목적과 의미를 갖고 사용한다. 남편은 아내와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는 하나의 절차로 여기고 아내는 남편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유지하는 지속적인 행위로 여긴다.
데보라 태넌이 남녀의 언어에 대해 했던 말은 ‘부부관계'로 바꿔서 말해도 여전히 즐거운 통찰을 준다. “남자는 자신의 독자성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부부관계를 사용한다. 그러나 여자는 관계와 친밀함을 창출하기 위해 부부관계를 사용한다.” 사랑하면 더 알고 싶고, 알면 더 사랑하게 된다. 20년을 함께 산 부부도 여전히 서로에게 미지의 존재다. 아직도 오해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사랑하니까 말이다. 오늘 밤엔 서로의 부부관계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위의 상황에서 남편과 아내가 했던 말 중 굵게 표시되어 있는 말들은 원래 다음과 같은 뜻이다. 이 부부가 부부어 사전을 알고 있었더라면 관계가 험악해지지 않았으련만…. 나랑 이야기 좀 해요 : 지금부터 내가 하는 수다를 좀 들어줘야겠어요 ※ 잡은 물고기에 대한 오해 _ 미혼남녀의 '관계' ‘관계'는 남자와 여자가 연애할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다. 가령 남자가 여자를 더 좋아한다. 먼저 만나자고 한다. 돈도 아끼지 않는다. 집에도 바래다준다. 자주 전화하고 문자도 보내고 꽃이며 선물도 빠뜨리지 않고 기념일도 잘 챙긴다. 이런 남자의 정성에 감동해서 여자는 남자를 애인으로 받아들인다. 이 순간 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여자의 마음 여자는 이제 본격적인 연애를 해보려는데 남자는 어째 심드렁하다. 전화도 드물어지고 만나는 횟수도 줄어든다. 어떻게 된 일일까? ‘잡은 물고기에게는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인가. 여자는 당황한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른다. 그토록 자신에게 잘해 주던 남자가 왜 갑자기 딴 사람처럼 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남자의 마음 남자 쪽 사정은 이렇다. 남자는 그동안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활을 많이 희생 했다. 일도, 친구도, 가족도, 취미생활도 모두 유보해 놓고 여자에게 몰두했다. 그래서 여자 로부터 애인의 관계를 얻은 것이다. 관계를 확정 지은 것이다. 이제 남자는 안심한다. 비로소 남자는 그동안 밀쳐 두었던 자신의 생활을 하러 떠난다. 일도 좀 챙겨야 하고, 친구 들 모임에도 나가야 한다. 관계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다.
자신과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배우자로 만난 사람과 잘사는 일이다. 좋은 배우자는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먼저 노력하는 나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그것이 인생의 진리이다.
김상득 / 듀오 기획부장, <남편생태보고서>ㆍ<대한민국 유부남 헌장> 저자 |